이란 사태, 라프산자니(전문가 위원회 의장)가 새로운 '태풍의 눈'
“라프산자니가 하메네이의 축출을 시도할 수도 있다.” 블룸버그는 21일 아누시 에테샤미 영국 더햄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AP통신도 이날 “라프산자니가 이란 사태의 ‘막후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이란 사태의 새로운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프산자니는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현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같은 ‘혁명 1세대’다. 1989~97년 대통령도 연임했다. 하지만 성향은 두 사람과 다르다. 경제를 중시하고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유연한 자세를 보여 ‘중도 실용주의자’로 꼽힌다. 이번 대선에선 개혁파 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를 공개 지지하며 돈줄 역할을 했다. ◆이란의 막후 실력자= 라프산자니는 국가임시조정위원회와 전문가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국가임시조정위원회는 선출직인 의회와 비선출직인 헌법수호위원회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정부 정책을 감시하는 기구다. 성직자 86명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의 힘은 더욱 막강하다. 최고 지도자의 임명·해임권을 갖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는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합법적으로’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의장이라고 라프산자니가 전문가위원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위원회에서 라프산자니파와 하메네이파는 각각 4분의 1 정도로 엇비슷하다. 나머지는 중도파다. 하지만 올 3월 전문가위원회 의장 선거에서 보수파에 압승했던 라프산자니가 이번에도 중도파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할 경우 하메네이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된다. 라프산자니의 또 다른 힘은 경제력에 있다. 미국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브스’는 2003년 그를 ‘이란 최고의 부자’로 꼽으면서 그와 그의 일가를 ‘이란 정부 뒤에 숨은 진짜 권력’으로 묘사했다. 하메네이와 아마디네자드가 라프산자니를 못마땅해하면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다. ◆언제 침묵 깰까= 라프산자니는 선거가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나고, 무사비 지지자들이 투표 부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일주일 넘게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서정민 교수는 “라프산자니가 쉽게 정치적 입장을 밝히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가·기업가이기 전에 종교 지도자다. 섣불리 반하메네이 대열에 동참했다간 종교계 보수파에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라프산자니의 딸 파에제 라프산자니 등 일가 4명을 체포했다가 21~22일 풀어준 사건이 전환점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부는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라는 명분을 달았지만 라프산자니로서는 모욕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들은 라프산자니가 침묵을 깨고, 행동에 나설 경우 정국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